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2015. 1. 24. 22:07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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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신경숙의 소설『엄마를 부탁해』.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작품으로, 작가가 <리진> 이후에 펴내는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다. 연재 후 4장으로 구성된 원고를 정교하게 수정하고, 100여 장에 달하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소설의 이야기는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이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추리소설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전개된다. 늘 곁에서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은 존재였던 엄마는 실종됨으로써 가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각 장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딸, 아들, 남편으로 관점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
신경숙
출판
창비
출판일
2008.11.10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언젠가 꼭 한번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책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 신경숙의 성격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작가의 방’이라는 책을 통해 신경숙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의 책 중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22개국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모두 감동시킬만한 주제, 그것은 바로 ‘엄마’였다.

 

 작가는 책의 첫 문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문장의 의미에 갸우뚱거리면서도 엄마를 잃어버린다면 어떤 감정일까 생각해보면서 책을 읽어 내려간다. 정말로 이 책의 가족들은 엄마를 서울 한복판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엄마는 흔적만 남길 뿐 발견되지 않고, 가족들은 ‘엄마’라는 존재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다. 말하자면 이 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라고 할 수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가족들은 ‘나’라는 말 대신에 ‘너’라고 말한다. 곧 읽다보면, ‘너’는 자기 자신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독자는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책은 엄마를 잃은 가족들의 반성문인 것이다.

 

엄마가 죄가 많다. 너에게 미안하다, 형철아.(p.110)

 

 서울로 올라간 아들 형철에게 동생을 맡기며 엄마는 말한다. 엄마의 말은 무덤덤하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당신들 걱정이나 하라고. 말에서는 그의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부족함이 없도록 죽을 만큼 애썼다면, 가족들은 엄마를 잃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엄마의 역할은 항상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제, 미안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닌 가족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큰 아들 형철이의 고백이었다. 나도 아들이기에 ‘형철’이라는 인물이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그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형철이의 고백을 읽는 내내 나를 찌르는 자책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모두 엄마의 딸이거나 아들, 그리고 남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부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일 것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아빠가 사라진 엄마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엄마의 인생이 가장 잘 드러난다.

 

나보다 더 오래 살지는 마시우.(p.162)

 

 그 이유를 알고 나서 내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 못살겠느믄 큰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고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중략)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

 

 진작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아빠에 대한 원망, 하루 종일 남만 돌보고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한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미안함.

 

 가족들은 엄마의 감정이나 아픔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두통을 앓아도 그것이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아챘다. 그리곤 후회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진짜 엄마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 온 고향을 둘러보고, 행복했던 기억, 상처 받은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그런데 엄마는 가족을 원망하고 심판하거나 문책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말은 그저 ‘사랑한다. 와 ‘미안하다’ 뿐이다. 엄마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가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책이 끝날 때가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동생이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여동생의 편지에는 그가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자신은 절대로 엄마와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에게 엄마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 알았을까.(p.261)

 

 딸의 고백은 책을 읽고 난 우리 모두의 심정을 대변한다.

 

 가족의 상황에서 가장 할 말이 많고, 가장 마음이 아픈 사람은 당연 엄마일 것이다. 그 두 번째는 아빠다. 아빠는 평생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 감정,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 놓는다. 항상 빨리 가려고만 하고 아내를 챙기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 자신이 아플 면 밤을 새며 간호하던 아내의 고마움을 느낀다. 또한 정작 아내가 두통에 시달릴 때 무심했던 자신을 질책한다. 가족들은 아빠를, 서로를 탓하지만 결국 모두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빠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화를 느낀다. 그의 매정함, 무심함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 분노는 가장 할 말이 많고 분노해야 할 마지막 사람, 엄마의 고백으로 인해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변해 독자를 울린다. 작가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할 것이기에 어떤 문장과 단어 사이에서도 엄마의 심정이 묻어난다.

 

 시원스럽게 욕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가족 한명 한명에게 잘잘못을 따지며 화를 냈으면 좋으련만. 무관심한 가족들을 향해 왜 내 소중함을 몰랐냐고, 그걸 왜 이제 깨닫느냐고 대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엄마는 가족과 함께 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자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뚝딱 해치울 때, 작은 딸 아이 입학식에 가보았을 때, 큰 딸이 공부를 잘 해서 약대를 합격했을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

 

 딸아이에게 사달라고 졸라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밍크코트를 살펴본다. 정든 집을 돌아본다. 자신이 도와 준, 평생 동안 비밀로 간직한 한 남자에 대한 기억.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파 몰래 글을 배우러 다닌 기억.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말,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없었던 것. 바로 ‘엄마’라는 존재다. 자신도 받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사랑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서 우리는 모성애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애의 절반은 모성애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엄마를 부탁해’ 대부분의 내용은 한국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그로부터 묻어나오는 모성애 또한 가슴에 와닿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반응을 뒤집고 ‘엄마를 부탁해’는 2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모성애는 모든 문화를 넘어서는 사랑임을. 덕분에 신경숙의 메시지는 전세계에 전달될 수 있었다. 널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엄마께 잘 해드리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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