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2015. 12. 20. 14:38Library

반응형
 
그리스인 조르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그리스인 조르바』.바람이 거센 어느 날, 동트기 직전 피레에프스 항구의 한 카페. 젊은 지식인인 화자는 몇 달간만이라도 책들은 치워 버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배를 기다리며 단테의 《신곡》에 막 몰두하려고 할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60대 남자가 유리문 너머로 그를 보고 있다. 남자는 다짜고짜 다가와 자신을 데려가라고 요구한다. 생각지도 못할 수프를 만들 줄 아는 요리사이자 꽤 괜찮은 광부이며, 산투르 연주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남자가 바로 자유인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화자는 그의 도발적인 말투와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를 갈탄 광산의 채굴 감독으로 고용하는데…….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출판
더클래식
출판일
2017.01.20

 

 

 ‘자유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딘가에 구속되어 있지 않으며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이일까?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이일까?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과연 조르바가 어떤 이였기에 작가에게 이토록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작가가 처음으로 조르바와 조우한 운명적인 순간부터 죽어서 평생 헤어질 때까지의 긴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당시 지식인였으며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작가의 표현대로)에 쳐박혀 있던 카잔차스키는 크레타의 수천만 동포를 위해 투쟁하는 친구로부터 책벌레라는 말을 들은 뒤,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행동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크레타 해안의 갈탄광 사업을 시작한 것. 크레타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어느 카페 안에서, 한 사내가 그에게 말을 건넨다.

 

여행하시오? 어디로? 하나님의 섭리만 믿고 가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p.17)

 

 조르바는 대뜸 작가에게 갈탄광에 데려가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작가의 표현대로 살아있는 가슴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에게 반해 그와 동행하게 된다.

 

 조르바는 산투르 연주가 취미였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는 그것을 잊기 위해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이다. 카잔차스키와 조르바는 때로는 다투기도 하였는데,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작가와는 달리 인간은 짐승일 뿐이라며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르바였기 때문이다.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그런데도 두목은 이걸 알지 못해요.(p.82)

 

 금욕주의자이며 불교신자인 작가에게 조르바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채찍이 되어 날아 들었고, 마침내 그는 다짐했다. 붓다에서 벋어나고 형이상학적 근심인 언어에서 자신을 끌어내 마음을 해방시키기로. 또한 할 수 있는 한,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지기로.

 

 조르바의 성격과 가치관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르바는 과거 터키인들의 목을 자르고, 귀를 술에 절인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작가에게 꺼낸다. 그는 한때 도자기에 빠져있는 동안 손가락이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게다가 호색하는 재주라면 당할 자가 없다. 조르바는 여관집 주인인 오르탕스 부인은 젖통을 움켜잡으며 밤새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는 또한 정의로운 사내이기도 하였다.

 

시파카스, 자네는 저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여자에게 자비를 베풀게.(p.355)

 

 당시 사람들이 과부를 더러운 년이라 욕하며 쳐죽이려 할 때, 조르바는 나서서 귓조각이 잘려 나갈 때까지 그들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신의 계시로부터, 현자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조르바는 오직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자유, 열망과 욕망을 진리라 믿었고, 그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그는 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조르바! 이리 와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춤이라고요, 두목? 정말 춤이라고 했소? 야호! 이리오쇼!
조르바, 갑시다.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놉시다!(p.418)

 

조르바를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했다.(p.419)

 

조르바와 작가는 함께 춤을 추며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닫는다. 조르바는 작가에게 할 말이 아주 많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한 감정 역시 그는 춤으로 표현한다. 이 부분은 나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카잔차키스의 생각의 변화가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졌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분명 난해한 부분이 제법 많이 등장한다. 고전 문학이라 불리지만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정신이 이상한 수도승 자하리아, 과부를 더려운 년이라 욕하며 죽이는 사회적 분위기 등은 분명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사하는 크레타섬은 아름다우며 조르바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는 끝없는 감동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말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 ‘산투르’, ‘사랑’, ‘정의로움’. 이 단어들에는 조르바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조르바의 삶은 자유였고, 자유가 곧 조르바의 삶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자유란 인간다움이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조금 전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책을 던져버리고는 자유를 찾아 나섰다.

 

 

그가 생전에 마련해 놓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옮긴이의 말(이윤기)중에서

 

 

 고전은 시대가 변해도 그것이 주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면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겉은 조르바처럼 살지 않더라도, 마음 속 깊은 곳의 조르바는 남겨두라고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