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전쟁, 『이중나선』을 읽고

2014. 4. 13. 22:09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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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나선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받는 DNA 구조를 발견하는 과정과 인물들, 특히 과학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소 직설적이고 유머스럽게 써내려간 『이중나선』은 과학자들의 세계를 막연하게만 이해해왔던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이는 단지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비 과학도 혹은 이 분야의 문외한이 읽어도 과학자라는 인물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애송이 미국인 과학도가 영국 케임브리지에 유학하면서,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였던 DNA 구조의 모형을 만들고 설명해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DNA 구조를 밝혀내는 과정을 둘러싸고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 라이너스 폴링, 모리스 윌킨스, 로잘린드 프랭클린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한 상황에서. 왓슨은 과학적 업적을 서로 먼저 이루기 위해 펼치는 치열한 경쟁과 갈등, 속임수, 실패와 좌절, 우연히 떠오른 영감 등이 잘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중나선』이 지금까지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얻는 스테디셀러가 된 까닭은 장차 과학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과학자와 그들의 연구의 본질은 무엇인지, 또한 자신들이 활동하게 될 과학자 사회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길잡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
제임스 왓슨
출판
궁리
출판일
2019.07.30

 

 

 보통 우리는 DNA 구조하면 머릿속에서 바로 왓슨과 크릭이 떠오른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이 둘에 의해서만 밝혀졌다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과정은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라이벌과 경쟁의식이 얽혀있었다. 나는 시대의 순서를 무시하고 잘 정리되어 있는 교과서와는 철저히 다른 1950년대의 'DNA 전쟁' 과정을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이라는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중나선을 읽기 전에, 이 책은 제임스 왓슨에 의해 쓰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책이 그리 객관적이지는 못하지만, 이 때문에 왓슨 자신의 심리와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이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DNA 구조를 밝혀 대박을 친 과학자다. 물론, 한 순간에 DNA 구조를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 크릭은 단백질의 구조를 푸는 이론에 주목했던 무명의 과학자였다. ‘이중나선은 바로 이 둘이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왓슨은 어릴 때부터 지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왓슨의 경우 캐번디시 연구소에 오기 전까지 여러 대학에 떨어졌고 인디애나 대학에서 겨우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상태였다. 크릭은 빠른 머리 회전이 통찰력이 있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기 직전에 연구실이 폭격당하여 학업을 중단하는 등 캐번디시 연구소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왓슨이 캐번디시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크릭은 이미 당시 단백질 결정학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고 한다. ‘이중나선에서 왓슨은 크릭을 오지랖이 넓고 거침없었다.' 고 표현했고 자신은 그런 크릭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세균학자 에이버리는 DNA 분자가 유전형질을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았고, 단백질 분자가 유전형질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캐번디시 연구소 사람들도 DNA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연구팀을 짜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모리스 윌킨스가 먼저 DNA 구조를 X선 회절법으로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윌킨스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남이 먼저 하던 연구에 뛰어드는 것을 염치없는 짓이라고 여겼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처럼 다양한 과학자들의 심리가 나타나 매우 재미있다. 교과서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윌킨스의 조수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다. 프랭클린은 머리가 매우 비상하고 전문가 근성으로 무장된 드문 여성 과학자였다. 그러나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서로에게 원했던 것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윌킨스는 프랭클린이 조수로서 자신의 연구를 돕기를 바랐지만, 프랭클린은 스스로 연구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제는 인물이 그만 나올 법도 한데, 아직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 바로 라이너스 폴링. 그는 이미 세계적인 정상급 화학자로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등 분자 구조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만약 DNA 구조에 집중한다면 구조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 책에는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폴링이 알파 나선 구조를 밝혀냈을 때 왓슨은 그의 논문을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이다. 그가 자신이 미래에 밝힐 DNA 구조에 의해 나 같은 학생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이 구절은 얼마나 폴링이 대단한 과학자였는지 나타내는 구절이기도 하다.

 

 왓슨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결국 영국에 갈 수 있었다. 그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싼 하숙집에서 머물렀다. 왓슨이 페루츠를 찾아갔을 때 그는 결정학의 가장 기초 개념인 브래그의 법칙도 모르고 있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도 알고 있는 것을 왓슨이 이때까지도 몰랐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해 속으로 웃기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왓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은 과학자였다. 그러다가 케임브리지의 실험실에서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게 된다.

 

 왓슨이 말하기를, 첫 만남부터 크릭은 DNA가 단백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바로 친해졌다고 한다. 두 젊은이는 매일 만나 유전자 구조에 관해 이야기했고, 라이너스 폴링이 했던 것과 같은 실험으로 그를 보기 좋게 제압하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왓슨과 크릭은 진정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지적 자극을 주면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젊은이는 만나기만 하면 유전자나 DNA에 관해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러던 과정에서 왓슨과 크릭은 자신들도 DNA의 구조를 밝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바로 DNA 연구의 시작이었다.

 

 이중나선의 중반부는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과 과학자들의 일상생활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겉보기에 왓슨과 크릭의 일상은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별로 없었지만, 내면적으로 그들은 항상 깊이 사고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것이 그들이 DNA 구조를 밝혀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나도 닮아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연구할 때는 연구만하고, 놀 때는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과학적 사고를 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DNA 구조의 결정적인 실마리는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이었다. 윌킨스는 이 사진을 왓슨에게 보여주었고, 왓슨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조금만 연구하면 구조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하루 종일 분자 모형에 붙들렸고, 염기 2개가 대칭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그렇게 된다면 DNA가 뒤틀리는 모양이 되지만, 자신이 DNA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며칠 뒤, 왓슨은 염기를 이리저리 결합시켜 보다가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을 연결하면 딱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염기가 상보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이었다. 왓슨은 이모형이 샤가프의 법칙도 설명할 수 있고, 복제 과정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놀랐다. 그는 이 획기적인 사실을 서둘러 크릭에게 전달한 뒤, 이중나선 모형 제작에 집중했다.

 

 마침내 DNA 모형이 완성되었다. 왓슨과 크릭의 모형을 본 과학자들은 아무런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형은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왓슨과 크릭의 희열과 흥분을 덩달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1953425, 네이처에 고작 128줄 밖에 안 되는 짧은 논문이 실리게 되었다. DNA 전쟁의 끝을 알림과 동시에 생명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사건이었다.

 

 이 공로로 왓슨과 크릭, 그리고 윌킨스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방사능 노출로 인해 난소암에 걸렸고, 38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더라면 반드시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 정신 하나로 성차별 등 힘든 상황을 견뎌낸 그녀가 진정으로 존경스럽다. 사실, ‘이중나선은 출판된 이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프랭클린을 무시하고 깔보는 말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협력하여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변화가 오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중나선을 읽고 수많은 경쟁자들 중에 왜 하필 왓슨과 크릭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한 답은 왓슨이 이중나선 발견 40주년 기념회의에서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법칙을 이야기했는데, 첫째, 승자로부터 배워라. 둘째, 모험을 해라. 셋째, 의지할 사람을 만들어라. 넷째, 즐겨라,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며, 지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과학자들과 어울려야 한다.

 

 왓슨이 한 말 중, 나에게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쟁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이중나선에 도달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고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면, 과학계를 떠나라라는 말을 통해 왓슨과 크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았고, 그들이 서로에게 진정한 동료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남긴 말을 적어놓겠다.

 

과학과 일상생활은 분리될 수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이중나선을 읽고 얻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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