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은 지배적인가, 아니면 제한적인가? - 트렌드 이론(Trend Theory)

2023. 2. 24. 22:15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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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_Ana/Shutterstock.com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맥루한은 미디어를 ‘메시지’란 짧고 간결한 단어로 표현했다. 그는 너무 철학적인 표현을 사용한 나머지 본래 의미를 축소시켜 버렸다. 예를 들어, 수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숫자와 방정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저명한 수학자가 수학은 ‘조화’라고 말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멋있게 말하려다가 뜬구름 잡게 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매스 미디어(mass media)’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매스(mass)는 거대한 집합체를 의미한다. 소통(communication)의 한 종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매스 미디어의 특징이다. TV 방송, 라디오, 인터넷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미디어가 송출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영향을 받는 자는 대중이고, 대중은 수많은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나도 포함되므로, 우선 나에게 미디어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았다. 내 경험은 가장 자세하고 확실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을 거치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미디어의 영향에 조금씩 노출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게임을 즐겼고 mp3에는 수많은 대중가요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과 개그콘서트, 그리고 수많은 예능은 나의 오락과 취미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생겼다. 매일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했고 SNS에 가입해 글을 올렸다. 당시 페이스북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뉴스, 가십거리,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피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찾아온 인터넷 게임의 중독은 미디어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게 하였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였기에, 나는 미디어를 끊어내기 위해 2G 휴대전화를 사용하였다. 그러자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인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뉴스와 사연, 연예인들의 입담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대학생이 되어 신형 스마트폰을 샀고, 매일 아침 SNS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나는 내 삶이 미디어를 통해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미디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계속 변화하는 중이며 따라서 나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글을 쓰는 지금이 굉장히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볼셰비키 혁명과 나치즘에서 드러난 선전(propaganda)을 거치며 매스 미디어의 무서운 영향력을 겪은 뒤 ‘마법의 탄환 이론’이 등장했다. 미디어는 대중들을 선동하기 쉬우며 폭발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른 입장이 등장했다. 1940년대 미 대선을 연구해보니 미디어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 여기서 ‘제한효과 이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반두라의 ‘사회적 학습이론’은 조금 더 성숙하고 분별있는 대중을 가정한다.(선별적 학습 등) 그러다가 다시 매스 미디어의 교묘하고 무서운 성질을 알게 되었는지 ‘문화계발이론’이 등장해 대중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세뇌당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제3자 효과’나 ‘침묵의 나선 이론’ 등, 결국 이러한 이론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콜럼바인 총기사태가 일어난 연도에는 미디어가 개인의 폭력성에 미치는 영향이 지배적이라고 주장한 이론이 많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미디어에 대한 이론이 이렇게 다양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미디어가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생활에 들어온 지 20년 만에 SNS와 개인 방송의 시대가 열렸다. 두 번째 이유는 미디어가 발전함에 따라 대중의 인식과 성숙도 역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히틀러가 나타나 자신의 이념을 실현시키려고 해도 절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매스 미디어와 대중, 이 두 가지 집합체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오히려 이 상호작용이 미디어의 무서운 영향력을 증명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정리하면, 미디어 이론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현상 자체가 미디어의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대를 관통하여 이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을까?

 

 지금까지의 미디어 이론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미디어와 대중 사이의 상호작용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트렌드 이론(trend-theory)’을 제안한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본인이 이름을 붙였기 때문임) 매스 미디어와 대중이 서로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유를 ‘트렌드(trend)’라고 보는 이론이다. 트렌드란 시대의 추세, 조류, 유행을 의미한다. 트렌드는 꼭 패션이나 명품, 스타일이 아니다. 이념이나 단어, 작은 습관까지도 트렌드가 될 수 있다.

 

 나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 트렌드 이론을 구상해보았다. 이 이론에서 하나의 순환주기(cycle)를 가정해보았다. 먼저, 미디어가 하나의 트렌드를 선보인다. 다음으로 이 미디어가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꽤 많은 수의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리고 대중은 바로 그 트렌드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개개인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렌드는 점진적으로 분화되어 수많은 가지로 자라난다. 점점 다른 생각이 추가되고 급진적이게 변하기도 하며 그 트렌드를 반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대중과 미디어간의 괴리가 형성된다. 대중들은 미디어를 불신하게 되며 미디어 역시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미디어와 대중이 상호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없다면 미디어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미디어는 재빨리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여 대중들을 만족시킨다. 다시 대중의 신뢰를 힘입은 미디어는 또 다른 트렌드를 선보이고 순환주기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이론대로라면 트렌드의 사이클을 대중과 사회가 서로 보완해야 하지만 이를 교묘히 틀어놓으려고 하는 존재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이 사이클 위에는 ‘국가 권력’과 ‘기업’이 있다. 이 두 집합체는 대중을 트렌드의 사이클을 통해 조종하려고 한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는 미디어가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KBS, MBC는 파업을 통해 다시 대중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렌드 이론에 입각하여 볼 때 이는 국가 권력이 파괴한 트렌드의 사이클을 어느정도 복구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대두된 트렌드로 ‘YOLO’가 있다. 바로 ‘You Only Live Once’라는 문장의 약자로 인생은 한 방이라는 의미와 같다. 영미권에서는 무모한 도전을 두고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른바 ‘헬조선’과 ‘흙수저’ 등의 키워드가 유행하는 최근 한국의 현 상황에서 ‘YOLO’는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트렌드의 사이클을 따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YOLO life’를 SNS에 인증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트렌드의 가지’가 자라난 것이다.

 

 그 트렌드의 가지 중의 하나가 바로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김생민은 20년전에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꾸준히 방송인으로 활동하였지만 그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한 방송인이었다. 그런 그가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의 영수증을 꼼꼼히 분석, 자신만의 절약 습관과 노하우로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팟캐스트 1위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티클 모아봐야 티클, 어차피 인생은 한방이다’라고 주장하는 YOLO에 대한 인식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의 움직임은 새로운 트렌드로 나타났다.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대중에게 ‘스튜핏’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김생민의 호통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였고 이는 신중한 소비습관과 작은 돈도 열심히 모으는 절약습관으로 이어졌다. 미디어는 이런 달라진 대중의 트렌드를 인식하고 재빨리 새로운 트렌드를 내놓기 시작했다.(실제로 김생민은 지상파 방송과 예능, 광고에 출연하였다.)

 

 결국 나는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배적인가, 제한적인가?’라는 이 물음에 새로운 대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대중 역시 미디어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를 단계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트렌드 이론’이다. 맥루한을 따라 간결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면, 미디어는 ‘반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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